[중동의 역사] 3/52화: 함무라비 법전: ‘눈에는 눈’의 진짜 의미와 고대 법치주의

바빌론의 왕, 법으로 제국을 다스리다
지난 2화에서 우리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이 인류에게 문자와 도시, 그리고 바퀴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겼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수메르의 도시국가들이 흥망을 거듭한 뒤, 그 문명의 유산 위에 새로운 강자가 등장합니다. 바로 바빌론입니다. 기원전 18세기, 바빌론의 여섯 번째 왕 함무라비(Hammurabi, 재위 약 BC 1792~1750)는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일하며 고대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인 법전을 남겼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단순한 법률 모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 제국이 다양한 민족과 도시를 어떻게 하나의 질서 아래 통합했는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선언이자, 고대 사회의 가치관과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문구의 진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함무라비 법전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제국 통일의 필요
함무라비가 왕위에 올랐을 때,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도시국가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북쪽에는 아시리아, 동쪽에는 엘람, 남쪽에는 라르사 왕국이 세력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함무라비는 약 30년에 걸친 전쟁과 외교를 통해 이 도시국가들을 하나씩 병합해 나갔고, 마침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 대부분을 통일했습니다.
그런데 군사적 정복만으로는 제국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서로 다른 관습과 전통을 가진 도시들을 하나로 묶으려면 공통의 규범이 필요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바로 이 필요에서 탄생했습니다. 법전은 왕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제국 전역에 걸쳐 통일된 재판 기준을 제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법전은 아니었다
흔히 함무라비 법전을 ‘인류 최초의 법전’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함무라비보다 약 300년 앞서 우르-남무 법전(Code of Ur-Nammu, 약 BC 2100~2050)이 존재했으며, 리피트-이슈타르 법전과 에슈눈나 법전도 함무라비 법전보다 앞섭니다. 다만 함무라비 법전이 특별한 이유는 그 규모와 체계성, 그리고 보존 상태에 있습니다. 282개 조항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은 당대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으며, 높이 약 2.25미터의 검은 섬록암 비석에 새겨져 거의 완전한 형태로 현대까지 전해졌습니다.
비석의 발견
함무라비 법전 비석은 1901~1902년 프랑스 고고학 탐사대에 의해 현재 이란 남서부의 수사(Susa)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원래 바빌론에 세워져 있던 것을 기원전 12세기경 엘람의 왕 슈트루크-나훈테가 전리품으로 가져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이 비석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상단에는 함무라비가 태양신이자 정의의 신인 샤마쉬(Shamash)로부터 법의 권위를 부여받는 장면이 부조로 새겨져 있습니다.
‘눈에는 눈’의 진짜 의미
복수의 원리가 아닌 제한의 원리
함무라비 법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은 단연 ‘눈에는 눈, 이에는 이(탈리오 법칙, Lex Talionis)’입니다. 법전 196조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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