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역사] 52/52화: 21세기 중동: 현재의 지형과 다가올 질문들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하며 — 5천 년의 끝에서
지난 51화에 걸쳐 우리는 메소포타미아의 첫 도시에서 아랍의 봄까지, 중동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펼쳐진 5천 년의 드라마를 함께 걸었습니다. 수메르인이 점토판에 쐐기 문자를 새기던 순간부터, 2011년 튀니지 청년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던 순간까지. 그 사이에 제국이 일어서고 무너졌고, 종교가 태어나 세계를 갈랐으며, 국경선이 그어지고 다시 피로 번졌습니다.
이제 마지막 화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룰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중동’입니다. 역사 시리즈의 마지막 장이 현재를 다룬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란 본래 과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렌즈이며, 이 시리즈가 처음부터 지향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51화까지 쌓아온 맥락 위에서 오늘의 중동을 바라보면, 뉴스 헤드라인 너머의 구조가 보입니다.
21세기 중동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체입니다. 석유 부국의 초현대적 스카이라인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가 같은 시간대에 공존하고,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가 충돌하면서도 때로는 기묘하게 공존하며, 전통적 지정학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힘이 동시에 작동합니다. 이 복잡함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에서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랍의 봄 이후: 깨진 약속과 새로운 현실
51화에서 살펴본 아랍의 봄은 2010년대 중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나라마다 극적으로 달랐습니다. 혁명의 도미노가 지나간 자리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곳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혁명 이전보다 더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종말과 불확실한 전환
시리아 내전은 아랍의 봄이 낳은 가장 파괴적인 결과였습니다. 2011년 평화 시위로 시작된 움직임은 다자간 내전으로 확대되었고, 러시아와 이란의 군사 개입으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한때 전세를 역전시키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2024년 말,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세력의 급속한 진격은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2024년 12월, 반정부 세력이 다마스쿠스에 입성하면서 알아사드 가문의 반세기 통치가 막을 내렸습니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러시아로 망명했고, 시리아는 새로운 정치 질서를 모색하는 전환기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이 전환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수십 개의 무장 세력, 쿠르드 자치 지역, 외국 군대의 존재, 그리고 50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수백만 난민이 남긴 상처는 새로운 시리아가 풀어야 할 과제의 무게를 말해줍니다.
시리아의 경험은 42화에서 다룬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유산과 직결됩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그은 국경선 안에 다양한 종파와 민족을 묶어놓은 인위적 국가 구조는, 강력한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지는 순간 폭발적으로 분출되었습니다. 이것은 이라크에서도, 리비아에서도 반복된 패턴이었습니다.
리비아·예멘: 분열의 장기화
리비아에서는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축출 이후 통일된 국가 권력이 회복되지 못한 채 동서로 분열된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트리폴리의 국민통합정부(GNU)와 동부 토브루크의 하원, 그리고 칼리파 하프타르 원수가 이끄는 리비아국민군(LNA) 사이의 대립은 국제 사회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석유 자원을 둘러싼 경쟁, 수백 개에 달하는 민병대의 존재, 튀르키예·러시아·UAE·이집트 등 외부 행위자들의 개입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멘에서는 2014년 후티 반군의 수도 사나 장악 이후 시작된 내전이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의 군사 개입과 맞물려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 중 하나로 악화되었습니다. 수년간의 전투 끝에 2022년 이후 휴전이 유지되고 평화 협상이 진행되어 왔으나, 항구적 해결책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예멘의 비극은 사우디-이란 지역 패권 경쟁, 종파 갈등, 그리고 실패한 국가 건설이라는 중동의 구조적 문제들이 한 곳에 응축된 사례입니다.

튀니지: 유일한 성공 사례의 좌절
아랍의 봄에서 유일한 민주화 성공 사례로 꼽히던 튀니지는 2021년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의 헌법 정지와 의회 해산으로 민주주의 실험이 사실상 좌절되었습니다. 사이에드는 2022년 새 헌법을 통해 대통령 권한을 대폭 강화했고, 야당 인사와 언론인에 대한 탄압이 이어졌습니다. 10년간의 민주주의 실험이 경제 침체와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 채 권위주의로 회귀한 것입니다.
튀니지의 사례는 중동 민주화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합니다. 민주적 제도의 수립이 곧 민주주의의 정착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경제적 토대와 시민사회의 성숙 없이는 형식적 민주주의도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집트: 새로운 권위주의
이집트에서는 2013년 압델 파타흐 알시시가 군사 쿠데타로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를 축출한 이후 강력한 군부 통치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시시 정권은 무슬림형제단을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고 조직적으로 탄압했으며, 언론 자유와 시민 사회 활동을 크게 제한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도 외채 급증과 인플레이션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39화에서 다룬 무함마드 알리의 근대화 실험 이후 이집트는 200년간 ‘강한 지도자에 의한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패턴을 반복해왔습니다. 시시 정권도 이 연장선에 있으나, 1억 명을 넘어선 인구, 기후변화에 따른 나일강 수자원 위기,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르네상스 댐 문제는 과거의 공식으로는 풀기 어려운 새로운 도전들입니다.
걸프 국가들의 대전환: 탈석유와 비전의 시대
아랍의 봄이 레반트와 북아프리카를 뒤흔드는 동안, 걸프 협력회의(GCC) 국가들은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면서 전혀 다른 종류의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그 변화의 핵심은 ‘석유 이후’를 대비한 경제·사회 구조의 근본적 전환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비전 2030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의 변화는 2017년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의 실질적 권력 장악 이후 가속화되었습니다. ‘비전 2030’이라는 이름 아래 사우디는 석유 의존 경제에서의 탈피를 국가적 목표로 선언했습니다. 여성 운전 허용(2018), 엔터테인먼트 산업 개방, 관광 비자 발급, 네옴(NEOM) 미래 도시 프로젝트 등은 외부 세계에 가장 눈에 띄는 변화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위로부터의 개혁’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자유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정치적 반대 의견에 대한 탄압은 강화되었습니다. 2018년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이스탄불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된 사건은 국제적 비난을 불러일으켰고, MBS의 개혁 이미지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여성 활동가들의 투옥, 왕족 내 경쟁자 숙청 등은 개혁이 근대화를 의미하되 민주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45화에서 살펴본 이븐 사우드의 건국 과정에서 와하비즘은 사우드 가문 통치의 핵심 기둥이었습니다. MBS 시대에 종교 경찰의 권한이 대폭 축소되고 사회적 규범이 느슨해진 것은, 100년 가까이 유지되어 온 ‘왕가-울라마 동맹’의 근본적 재조정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새로운 사회 계약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열린 질문입니다.
UAE와 카타르: 작은 나라의 큰 야망
아랍에미리트(UAE)는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중심으로 금융·물류·관광 허브 전략을 일찍이 추진해왔으며, 21세기 들어 그 성과가 가시화되었습니다. 2020년 화성 탐사선 ‘아말’ 발사, 2021년 두바이 엑스포 개최는 기술 국가로의 전환을 상징했습니다. 외교적으로도 2020년 이스라엘과의 수교(아브라함 협정)를 통해 전통적 아랍 외교 노선에서 이탈, 실리 외교를 본격화했습니다.
카타르는 알자지라 방송을 통한 미디어 영향력, 2022년 FIFA 월드컵 유치, 그리고 탈레반-미국 협상이나 하마스-이스라엘 포로 교환 협상 등에서의 중재자 역할을 통해 인구 300만도 안 되는 작은 나라가 국제 무대에서 어떻게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2017년 사우디·UAE·바레인·이집트의 카타르 봉쇄 사태는 GCC 내부의 균열을 드러냈으나, 2021년 관계가 회복되면서 걸프 국가 간 협력이 재개되었습니다.
이들 걸프 국가의 공통점은 정치적 자유화 없이 경제적·사회적 근대화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부유한 권위주의’라는 이 모델이 석유 수입이 줄어드는 미래에도 유지될 수 있는지는 21세기 중동의 핵심 질문 중 하나입니다.

이란: 체제의 지속과 균열
48화에서 다룬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수립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40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정점으로 한 신정 체제는 대내적 도전과 대외적 압력 속에서도 놀라운 생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부에는 점점 깊어지는 균열이 존재합니다.
마흐사 아미니와 ‘여성, 생명, 자유’
2022년 9월, 22세의 쿠르드계 여성 마흐사 아미니(본명 지나 아미니)가 히잡 착용 규정 위반으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후 구금 중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란 전역에서 ‘여성, 생명, 자유(zan, zendegi, âzâdi)’라는 구호 아래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습니다. 시위는 단순한 히잡 문제를 넘어 체제 전반에 대한 불만의 분출이었습니다.
이란 정부는 강경 진압으로 대응했고, 수백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시위는 2023년 들어 대규모 거리 시위의 형태에서는 소강되었으나, 이란 사회 내부의 세대 갈등, 여성 권리 요구, 경제적 불만은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이란 인구의 절반 이상이 혁명 이후에 태어난 세대라는 사실은 체제의 장기적 정당성에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핵 문제와 제재의 악순환
이란 핵 문제는 21세기 중동 안보의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입니다. 2015년 체결된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이란 핵 합의)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 제한과 제재 해제를 교환한 역사적 합의였습니다. 그러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최대 압박’ 제재를 재가동하면서 합의는 사실상 붕괴되었습니다.
이후 이란은 우라늄 농축 수준을 점진적으로 높여왔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접근을 제한했습니다. 2025년 현재 이란은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을 상당량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핵 문턱 국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란이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등 역내 국가들의 핵 도미노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합니다.
이란의 ‘저항의 축’과 2024년의 변화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예멘의 후티,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을 통해 역내 영향력을 투사해왔습니다. 이 비대칭 동맹 네트워크는 이란이 미국이나 이스라엘과의 직접 대결 없이 전략적 심도를 확보하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2024년에 이 구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의 전면적 군사 충돌이 벌어졌고, 헤즈볼라는 지도부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면서 이란이 수십 년간 구축한 ‘테헤란-바그다드-다마스쿠스-베이루트’를 잇는 이른바 ‘시아파 초승달’ 회랑도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란의 역내 영향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과, 이란이 새로운 형태로 영향력을 재구축할 것이라는 전망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끝나지 않는 비극
46화에서 다룬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과 나크바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중동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분쟁으로 남아 있습니다. 21세기에도 이 갈등은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오슬로 이후의 교착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프로세스는 2000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의 결렬, 제2차 인티파다, 그리고 이후 수차례의 가자 전쟁을 거치면서 사실상 사문화되었습니다.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은 국제 사회의 공식 입장으로 남아 있지만, 현장의 현실은 이와 점점 괴리되어 왔습니다.
서안지구에서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꾸준히 확대되어 2025년 현재 약 70만 명 이상의 이스라엘인이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영토인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내부는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파타(팔레스타인자치정부)와 2007년부터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로 분열되어, 통일된 팔레스타인 협상 주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2023년 10월 7일과 그 이후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끄는 무장 세력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약 1,200명의 이스라엘인이 사망하고 250여 명이 인질로 끌려간 이 공격은 이스라엘 역사상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낸 참사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철검 작전’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군사 작전으로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 침공을 개시했습니다.
이후 벌어진 가자 전쟁은 그 규모와 파괴에서 이전의 어떤 가자 충돌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유엔과 국제 기구들의 보고에 따르면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망했고, 가자지구 인구의 대다수가 실향민이 되었으며, 기반시설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의 제노사이드 소송,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 청구 등 국제법적 차원의 대응도 전개되었습니다.
이 비극은 46화와 47화에서 다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적 맥락 없이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1948년의 나크바, 1967년 점령, 수십 년간의 가자 봉쇄, 그리고 평화 프로세스의 실패가 누적되어 온 구조적 문제가 가장 파괴적인 형태로 폭발한 것입니다. 동시에 이 사태는 중동의 다른 모든 현안 — 이란 문제, 걸프 국가들의 정상화 외교, 미국의 역내 역할 — 에 연쇄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협정과 정상화의 미래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수교했고, 이후 수단과 모로코가 합류했습니다. 미국의 중재 아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정상화 협상도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 흐름은 아랍 세계가 수십 년간 견지해온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없이는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 없다’는 원칙의 근본적 전환이었습니다.
그러나 2023년 10월 이후 이 정상화 프로세스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아랍 여론의 강력한 반발 속에서 사우디-이스라엘 정상화 협상은 사실상 중단되었고, 기존 수교국들도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축소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정상화가 재개되려면 가자 사태의 해결과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향한 구체적 진전이 전제 조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튀르키예: 제국의 기억과 지역 강국의 야심
44화에서 아타튀르크의 세속 공화국 건설을 다루었습니다. 21세기 튀르키예는 그 세속주의 유산과 이슬람적 정체성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에르도안의 튀르키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2003년 총리 취임 이후 20년 넘게 튀르키예를 이끌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경제 성장, EU 가입 협상 추진, 쿠르드 문제의 정치적 해결 시도 등으로 ‘이슬람 민주주의의 모델’로 평가받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권위주의적인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2016년 쿠데타 미수 사건 이후에는 대규모 숙청, 언론 탄압, 2017년 대통령제 개헌을 통한 권력 집중이 이루어졌습니다.
대외적으로 에르도안의 튀르키예는 31~33화에서 다룬 오스만 제국의 ‘전략적 기억’을 적극 활용하며 독자적 지역 강국 노선을 추구해왔습니다. 시리아 북부 군사 작전, 리비아 군사 개입, 아제르바이잔 지원, 동지중해 가스전 분쟁, 소말리아와 아프리카 진출 등에서 튀르키예는 냉전 시대의 NATO 충실한 동맹국에서 벗어나 독자적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행위자로 변모했습니다.
2023년 대선에서 에르도안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이 노선의 지속이 확인되었으나, 경제 위기(인플레이션·리라화 가치 하락), 대규모 시리아 난민 문제, 그리고 쿠르드 문제는 지속적인 도전 요소입니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튀르키예의 대시리아 정책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쿠르드 무장 세력에 대한 군사 작전과 시리아 재건에 대한 영향력 확보가 핵심 현안이 되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의 상흔과 재건의 고투
50화에서 다룬 2003년 이라크 전쟁의 유산은 여전히 이라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이라크는 종파 내전, IS(이슬람국가)의 부상과 패퇴, 그리고 고통스러운 재건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IS의 부상과 패퇴
2014년 IS가 이라크 북부 모술을 점령하고 ‘칼리프국’을 선포한 것은 21세기 중동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IS는 고대 유적 파괴, 야지디족 학살, 참수 영상 유포 등으로 세계를 경악하게 했습니다. 이라크군, 쿠르드 페슈메르가, 시아파 민병대(인민동원군, PMF), 그리고 미국 주도 국제연합의 공동 노력으로 2017년 모술이 탈환되고 IS의 영토적 ‘칼리프국’은 소멸했습니다.
하지만 IS의 이념적 잔재와 수면 아래의 조직은 이라크와 시리아 사막 지대에서 저강도 반란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IS의 부상이 가능했던 구조적 조건 — 수니파 소외, 부패한 거버넌스, 종파 간 불신 — 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의 현재
2020년대 이라크는 제한적이나마 정치적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무크타다 알사드르의 정치적 움직임, 친이란 시아파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 간의 경쟁, 쿠르드 자치정부와 중앙정부 간의 석유 수입 분쟁 등 내부 정치는 여전히 복잡하지만, 적어도 대규모 무력 충돌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감소했습니다. 이라크의 석유 생산량 회복과 고유가는 재건에 필요한 재원을 일부 제공하고 있으나, 부패·실업·기반시설 부족은 여전히 심각한 과제입니다.
쿠르드 문제: 국가 없는 최대 민족의 투쟁
약 3,000만~4,0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쿠르드족은 중동에서 국가를 갖지 못한 최대 민족입니다. 튀르키예·이라크·이란·시리아 네 나라에 걸쳐 거주하는 쿠르드인들의 자치·독립 열망은 100년 넘게 중동 정치의 변수였습니다.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KRG)는 사실상의 자치를 누리고 있으나, 2017년 독립 국민투표가 이라크 중앙정부와 국제 사회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독립의 꿈은 좌절되었습니다. 시리아에서는 쿠르드 주도의 시리아민주군(SDF)이 IS 격퇴 과정에서 로자바(북동시리아)에 자치 지역을 구축했으나, 튀르키예의 군사적 위협과 시리아 정치 전환기의 불확실성 속에서 그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튀르키예에서는 쿠르드노동자당(PKK)과의 40년 넘는 무력 분쟁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란에서도 쿠르드 지역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42화에서 다룬 사이크스-피코 체제가 만든 국경선이 쿠르드 민족을 네 나라에 분산시킨 역사적 기원을 고려하면, 쿠르드 문제는 중동의 국가 체계 자체가 내포한 구조적 모순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대국 경쟁과 중동의 지정학적 재편
21세기 중동의 지정학은 미국 패권의 상대적 쇠퇴,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확대, 그리고 역내 국가들의 자율성 증가라는 세 가지 추세로 특징지어집니다.
미국의 ‘피봇’과 중동
2011년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이후, 미국의 중동 관여는 점진적으로 축소되어 왔습니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이 흐름의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중동에 가장 큰 군사적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지만, 냉전 시대나 2000년대처럼 역내 질서를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위치에는 더 이상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중동 국가들로 하여금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 외교적 선택지를 다변화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와 OPEC+ 프레임워크에서 석유 생산 정책을 조율하고, 중국과 경제·기술 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이러한 다변화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중국의 중동 진출
중국은 일대일로(BRI) 구상 아래 중동 지역에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에너지 구매를 확대해왔습니다. 2023년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외교 관계를 정상화한 것은 중동 외교에서 중국의 역할이 새로운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중국은 중동 석유 최대 수입국으로서 역내 안정에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지며, 이것이 외교적 관여 확대의 근본 동인입니다.
다만 중국은 군사적 개입이나 안보 보장에는 소극적이며, ‘경제적 관여 + 정치적 비개입’이라는 모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군사적 안보 보장을 대체할 수 있는지는 역내 국가들 사이에서도 회의적 시각이 많습니다.
러시아의 중동 복귀
러시아는 2015년 시리아 군사 개입을 통해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극적으로 복원했습니다. 시리아 내 공군기지와 해군기지 확보, 이란·튀르키예와의 아스타나 프로세스 주도, 리비아 갈등에서의 간접 개입 등을 통해 냉전 이후 후퇴했던 중동 발언권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역량이 유럽 전선에 집중되면서 중동에서의 활동 여력은 축소되었고, 2024년 시리아 아사드 정권 붕괴는 러시아의 중동 전략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석유의 황혼과 에너지 전환
45화에서 석유 발견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 전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21세기의 가장 큰 구조적 변화는 이 ‘석유 시대’의 종언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너지 전환의 도전
세계적인 탈탄소 흐름, 전기차 보급 확대, 재생에너지 가격 하락은 장기적으로 석유 수요의 정점(peak demand)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0년대 후반에 세계 석유 수요가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 재정의 60~80%를 석유 수입에 의존하는 걸프 산유국들에게 존재적 위협입니다.
사우디의 비전 2030, UAE의 경제 다각화, 카타르의 LNG 확대 전략은 모두 이 ‘석유 이후’에 대한 대비입니다. 하지만 수백만 자국민에게 일자리와 복지를 제공해온 석유 기반 사회 계약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경제적 과제인 동시에 정치적 과제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에너지 전환이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큽니다. 아시아 신흥국의 에너지 수요 증가,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의 현실적 어려움,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한 에너지 안보 우려 등은 석유 시대의 황혼을 늦추는 요인들입니다. 걸프 산유국들은 ‘마지막 배럴의 석유’를 공급하는 저비용 생산국으로서의 지위를 활용해 전환기를 관리하려 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물: 중동의 존재적 위협
21세기 중동이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도전은 전쟁이나 정치가 아닌 기후변화일 수 있습니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인 중동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먼저, 가장 심각하게 받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과학적 연구들은 중동 지역의 기온이 세계 평균의 2배 속도로 상승하고 있으며, 21세기 후반까지 걸프 지역 일부에서는 인간이 야외 활동을 할 수 없는 수준의 ‘습구온도(wet-bulb temperature)’에 도달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수량 감소, 이란의 자얀데루드 강 고갈, 요르단의 만성적 물 부족 등은 이미 현실이 된 위기입니다.
2화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두 강 사이의 비옥한 땅에서 탄생했음을 기억해보세요. 그 물이 마르고 있다는 것은 이 지역 문명 자체의 기반이 위협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 문제는 이미 국가 간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으며 — 튀르키예의 댐 건설로 인한 이라크·시리아 수량 감소,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을 둘러싼 이집트·수단과의 분쟁 — 향후 중동의 안보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변수입니다.
인구, 청년, 디지털: 중동의 내적 동력
청년 인구와 실업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젊은 인구 구조를 가진 지역 중 하나입니다. 인구의 약 60%가 30세 미만이며, 청년 실업률은 세계 평균의 2배를 넘습니다. 이 ‘청년 팽창(youth bulge)’은 양면적입니다. 적절한 일자리와 기회가 제공되면 ‘인구 배당(demographic dividend)’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회 불안의 연료가 됩니다.
아랍의 봄이 청년 세대의 좌절감에서 촉발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의 구호 중 하나는 ‘빵, 자유, 사회 정의(خبز، حرية، عدالة اجتماعية)’였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 세 가지 요구 중 충족된 것은 거의 없습니다. 교육 수준은 높아졌지만 노동 시장은 이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의 경제 참여율은 세계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디지털 전환과 소셜미디어
중동은 세계에서 소셜미디어 보급률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입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확산은 국경을 넘어선 아랍어 공론장을 형성했고, 국가가 독점하던 정보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랍의 봄에서 소셜미디어가 조직화 도구로 활용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후에도 디지털 공간은 정치적 표현, 문화적 교류, 경제 활동의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동시에 많은 중동 국가들이 인터넷 감시, VPN 차단, 소셜미디어 통제, 사이버 감시 기술 도입 등을 통해 디지털 공간에서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걸프 국가들은 스파이웨어(페가수스 등)를 활용한 반체제 인사 감시로 국제적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시민의 도구인 동시에 통제의 도구가 되는 이 이중성은 중동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권위주의와 젊은 인구가 공존하는 이 지역에서 특히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5천 년의 맥락에서 본 오늘의 중동
이제 이 시리즈 52화를 통해 추적해 온 긴 역사의 맥락에서 오늘의 중동을 조감해 봅시다. 현재의 복잡한 지형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수천 년의 층위가 쌓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기억과 국민국가의 어색함
중동은 5천 년간 제국의 땅이었습니다. 아카드,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로마, 사산조, 우마이야, 아바스, 오스만 — 이 지역의 자연스러운 정치 단위는 광대한 영토를 아우르는 다민족·다종교 제국이었습니다. 35화에서 다룬 오스만의 밀레트 제도는 이런 제국적 다양성 관리의 한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후 이 제국적 공간 위에 유럽식 국민국가가 이식되었습니다(41~43화). 사이크스-피코의 직선 국경은 부족·종파·민족의 실제 분포와 무관하게 그어졌고, 그 안에서 ‘이라크인’ ‘시리아인’ ‘요르단인’이라는 국민 정체성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국민국가 프레임은 많은 곳에서 어색하게 남아 있습니다. IS가 사이크스-피코 국경을 부정하며 ‘칼리프국’을 선포한 것은 극단적이고 야만적인 형태였지만, 기존 국경에 대한 불만이 존재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기도 합니다.
종파 갈등의 뿌리
17화에서 다룬 680년 카르발라의 비극에서 시작된 수니-시아 분열은 1,300년이 지난 지금도 중동 정치의 핵심 변수입니다. 이란-사우디 경쟁, 이라크의 종파 정치, 바레인의 시아파 다수 대 수니파 왕정, 레바논의 종파 할당제 — 이 모든 것의 뿌리를 우리는 시리즈 초반에서 이미 확인했습니다.
다만 종파 갈등이 7세기부터 지금까지 불변의 상수였다고 보는 것은 오해입니다. 34화에서 살펴본 것처럼 시아파가 이란의 국교가 된 것은 16세기 사파비 왕조 때의 정치적 결정이었고, 오늘날의 종파 갈등 상당 부분은 20세기 이후 정치 엘리트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 종파 정체성을 동원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종파 갈등은 ‘고대로부터의 숙명’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구성되고 재구성되어 온 것이며, 따라서 영구 불변한 것도 아닙니다.
외부 개입의 패턴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11화)에서 9·11 이후의 이라크 전쟁(50화)까지, 외부 세력의 중동 개입은 이 지역 역사의 가장 일관된 패턴 중 하나입니다. 십자군(26화), 몽골(29화), 유럽 식민주의(40~43화), 냉전의 대리전(47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50화) — 형태는 달라도 외부 개입이 지역 질서를 뒤흔드는 패턴은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중동에는 ‘외부 세력이 우리 문제의 원인’이라는 서사가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이것이 때로는 내부 문제에 대한 솔직한 성찰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동시에 외부 개입이 실제로 중동의 정치 지형을 결정적으로 왜곡해온 것도 사실이며, 이 두 가지 진실은 모순이 아니라 공존합니다.
문명의 회복력
그러나 이 모든 파괴와 혼란의 역사 속에서도 중동은 놀라운 문명적 회복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9화에서 다룬 1258년 몽골의 바그다드 함락은 이슬람 문명 최대의 참사로 여겨지지만, 이슬람 문명은 소멸하지 않았습니다. 맘루크가 몽골을 저지했고(28화), 오스만이 새로운 제국을 세웠으며(31~33화), 학문과 문화는 카이로와 다른 중심지에서 계속되었습니다.
20~22화에서 살펴본 이슬람 황금기의 지적 유산 — 알고리즘, 대수학, 의학의 캐논, 그리스 철학의 보존과 발전 — 은 인류 문명 전체에 대한 중동의 기여가 석유보다 훨씬 오래되고 깊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오늘의 중동을 전쟁과 석유로만 정의하는 것은 5천 년 역사의 극히 일부만 보는 것입니다.
다가올 질문들
역사가 미래를 예측해주지는 않지만,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데는 도움을 줍니다. 52화에 걸친 여정의 마지막에서, 중동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질문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국가 모델의 문제
사이크스-피코 이후 만들어진 국가 체계는 유지될 수 있을까요? 시리아·이라크·리비아·예멘에서 중앙 집권적 국민국가 모델이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연방제, 분권화, 또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정치 조직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42화에서 다룬 100년 전의 국경선이 앞으로 100년도 유지될 수 있을지. 쿠르드족 같은 국경 횡단 민족의 자결권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둘째, 석유 이후의 사회 계약
걸프 산유국들의 ‘부유한 권위주의’ 모델은 석유 수입에 기반한 분배 국가(rentier state)였습니다. 세금 없이 복지를 제공하고, 정치적 참여 없이 물질적 풍요를 보장하는 사회 계약. 석유 수입이 줄어들면 이 계약의 양쪽 — 국가의 분배 능력과 시민의 정치적 복종 — 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경제 모델이 새로운 정치 모델을 동반하게 될 것인지.
셋째, 종교와 정치의 관계
15화에서 무함마드의 메디나 공동체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지 않았듯, 이슬람 세계에서 세속주의는 서구에서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44화의 아타튀르크식 강경 세속주의는 에르도안에 의해 수정되었고, 48화의 이란 신정 체제는 내부로부터 도전받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사회적 자유화는 종교적 권위의 재편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과 근대적 거버넌스의 관계에서 중동 각국이 어떤 모델을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넷째,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
76년째 이어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해법은 있을까요? 두 국가 해법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아니면 이미 서안지구 정착촌의 확대로 불가능해진 것인가. 만약 두 국가가 불가능하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하나의 민주국가? 연방? 현상 유지의 영구화? 어떤 답이든 수백만 팔레스타인인의 존엄과 이스라엘인의 안보를 동시에 담보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가능한 정치적 조건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다섯째, 기후 위기에의 적응
물 부족, 극단적 고온, 해수면 상승, 사막화 — 기후변화가 중동에 가하는 압력은 정치적·군사적 위협 못지않게 존재적입니다. 2화에서 시작된 이 시리즈의 출발점이 두 강 사이의 비옥한 땅이었음을 생각하면, 그 물리적 기반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은 문명사적 의미를 가집니다. 중동이 기후 적응의 혁신을 이끌 수 있을지, 아니면 기후 위기가 기존의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켜 더 큰 불안정을 초래할 것인지.
여섯째, 역내 질서의 재편
미국의 관여 축소,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제약, 그리고 역내 국가들의 자율성 증가 속에서 중동의 지역 질서는 어떤 형태로 재편될 것인가. 사우디-이란 화해가 지속 가능한 것인지, 튀르키예의 지역 강국 야심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의 정상화가 회복될 수 있을지. 외부 패권 없이 역내 국가들이 자체적인 안보 질서를 구축할 수 있을지.
시리즈를 마치며 —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52화에 걸쳐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을 되돌아봅시다.
1화에서 ‘중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을 때, 중동은 하나의 정의로 담을 수 없는 복합체였습니다. 52화를 마치는 지금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중동은 단수가 아닌 복수입니다.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들의 교차점입니다.
2~8화에서 만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페니키아의 고대 문명은 인류 문명 자체의 발상지였습니다. 문자, 법전, 알파벳, 도시, 농업, 야금 —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문명의 기본 요소 상당수가 이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9~12화의 페르시아 제국들은 다민족·다종교 세계를 관리하는 통치의 기술을 발전시켰고, 그리스·로마 세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동서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14~24화에서 다룬 이슬람의 탄생과 확산은 세계사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 중 하나였습니다. 단순한 종교의 전파가 아니라 새로운 문명의 창조였으며, 이슬람 황금기의 학문적 성취는 인류 지식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입니다. 지혜의 집에서 번역된 그리스 고전이 없었다면 유럽 르네상스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25~30화에서 만난 셀주크, 십자군, 몽골은 중동이 세계 여러 문명권의 충돌과 융합이 이루어지는 십자로였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파괴와 재건의 반복은 이 지역의 회복력을 시험했지만, 중동은 매번 새로운 형태로 부활했습니다.
31~36화의 오스만 제국 600년은 이슬람 세계 최후의 대제국이 어떻게 다양성을 관리하고, 어떻게 세계 경제에 참여했으며, 어떻게 쇠퇴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37~43화에서 우리는 근대의 도래와 함께 중동이 유럽 제국주의의 대상이 되고, 오스만 해체 후 오늘날의 국가 체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어진 선들, 맺어진 약속들, 심어진 갈등의 씨앗들이 오늘의 뉴스 헤드라인 상당수를 설명해줍니다.
44~51화는 20세기 — 민족주의, 석유, 냉전, 혁명, 전쟁, 그리고 아랍의 봄이 만든 현대 중동의 직접적 형성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52화에서 우리가 목격한 21세기 중동은 이 모든 역사적 층위가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 현실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제가 가장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닙니다. 중동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 — ‘전쟁과 테러의 땅’ 또는 ‘석유의 땅’ 또는 ‘이국적 환상의 땅’ — 로 환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5천 년의 역사를 알고 나면, 중동은 그 어떤 단일 레이블로도 담을 수 없는 풍요로운 다층적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역사는 예언이 아니지만 맥락을 제공합니다. 오늘의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려면 어제의 중동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리즈가 그 이해의 문을 열어드렸기를 바랍니다.
함무라비가 법전을 새기던 돌기둥 앞에서, 키루스가 바빌론에 입성하며 관용을 선포하던 순간에, 바그다드 지혜의 집에서 학자들이 밤새 번역하던 등불 아래에서, 그리고 카르발라의 뜨거운 모래 위에서 — 중동의 역사는 인간이 질서를 세우고, 지식을 추구하고, 신앙을 지키고, 자유를 갈망하는 보편적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52화에 걸친 긴 여정을 함께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중동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 시리즈가 그 계속되는 이야기를 읽는 데 작은 나침반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미지는 Leonardo AI 로 생성되었습니다.
이미지는 Claude AI 로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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